1.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 가능성
실리콘밸리 기업의 돈줄로 불리던 실리콘밸리은행(SVB) 이 파산한 후 금융시장은 글로벌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대형은행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SVB파산 이후 다른 은행이 연쇄도산하면서 우려가 커졌다. 대표적인 은행이 시그니처은행으로 SVB파산 이후 이틀 만에 도산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산하에 들어갔다. 이 은행은 미국 뉴욕·코네티컷·캘리포니아·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 등 지역에서 영업해 온 상업은행으로 총자산은 1104억 달러(약 144조 원), 예치금은 886억 달러(약 116조 원) 규모였다. 상업용 부동산과 디지털자산 은행 업무 분야에서 영업을 해 왔고, 특히 가상통화 거래 주요 은행으로 알려졌다. 미 금융당국은 가상통화 루나 붕괴, 가상통화거래소 FTX 파산 등으로 타격을 입었고, 최근 실버게이트와 SVB가 잇따라 파산하면서 뱅크런으로 갑작스럽게 문을 닫았다. 시장에서는 가상화폐 관련 은행이라는 점에서 SVB파산보다는 실버게이트 파산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SVB와 함께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 고객들을 주로 관리해 온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총 자산 2126억 달러(악 277조 원), 총예금은 1764억 달러(약 230조 원)로 SVB와 비슷한 규모인 이 은행도 중앙은행과 JP모건으로부터 긴급자금을 충원해 위기를 겨우 넘겼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스타트업 기술 사업에 몰린 중소은행의 문제일 뿐 정상적인 상업은행으로 위기가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전세계적인 금융시스템 문제가 아닌 실리콘밸리 기술투자 부문에 한정된 위기인 만큼 금융위기 전이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2. 금리인상에 미칠 영향
금융시장은 실리콘밸리은행파산 사태의 여파가 금리인상 속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SVB의 파산 이유가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과 이로 인한 미 국채 가격의 급락이 가장 큰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SVB는 미국의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를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에 투자를 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미 연준의 사상 최대의 금리인상 행진으로 미국 국채 가격이 폭락했고, 스타트업기업 들도 유동성 부족으로 현금인출에 나서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고객들이 현금인출을 시도하면서 SVB는 미 국채를 손실을 보며 팔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갑작스럽게 현금부족사태가 왔기 때문이다.
결국 SVB 파산이 누적된 금리인상의 효과가 유동성 위기로 불거진 사태라는 점에서 향후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실제 시장에서는 연준이 다시 ‘빅 스텝(한 번에 금리 0.5% 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SVB 파산을 계기로 ‘베이비 스텝(0.25% 포인트 금리인상)’ 전망 비율이 높아졌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사태 직후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근 은행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22일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하지 않는다”라고 발표할 정도였다.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만약 전체적인 지표상 더 빠른 긴축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라고 공언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SVB 파산이 미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면서 미 연준뿐 아니라 각국 통화정책에 더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3. 향후 전망과 국내 영향
SVB파산 이후 금융시장은 잠시 출렁거렸지만 과거 금융위기같은 패닉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태직후 미 정부가 고객 예금을 전액 보증해 주기로 하면서 진정세에 접어들었고, HSBC는 곧바로 SVB 영국 지사를 인수하며 불똥을 차단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여파가 단기간에 끝날 수 있을 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이번 사태의 영향으로 미국의 전체 은행 시스템에 대한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하면서 경각심을 던졌다. 은행의 보유 자산의 현재 가치가 많이 떨어져 금융기관들이 여전히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퍼스트리퍼블릭, 인트러스터 파이낸셜, UMB, 자이언즈 뱅코프, 웨스턴얼라이언스, 코메리카 등 6개 지역 은행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을 언급했다. 금리인상 속도가 늦춰지겠지만 고금리가 상당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유 채권 가치 회복이 더딜 가능성이 큰 만큼 장기적으로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미다.
다행인 것은 국내은행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아직은 적다는 것이다.국내은행의 경우 SVB와 달리 늘어난 현금을 유가증권 등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기보다는 주로 개인이나 기업 대출에 활용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말 국내 은행의 총예금은 약 2천243조 5천억 원으로 전년대비 107조 4천억 원 늘었는데 같은 기간 은행 기업대출도 104조 6천억 원 증가했다. 예금이 늘어난 만큼 대출을 한 셈이다.
국내 은행들은 개인과 기업대출의 전통적인 고객군에 집중하면서 금리 상승기 투자 리스크를 줄인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국내 은행들도 금리 상승에 따른 증시 부진, 채권가격 하락 등으로 투자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그 규모는 미미해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유가증권 관련 이익이 줄기는 했지만 개인과 기업대출로 인한 예대마진으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둔 바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연체율 증가와 이로 인한 대출채권 부실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SVB 같은 갑작스러운 파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행이 사태 여파가 금융권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적다고 평가한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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