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와 손정의의 향배를 가를 ARM 상장

1. 반도체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ARM의 위상  

세계최대 벤처캐피털인 소프트뱅크가 영국 반도체 팹리스기업인 ARM의 상장 계획이 모습을 드러내며 전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ARM은 2023년 미국에서 기업공개를 통해 자금을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다. 반도체 생태계의 정점에 서 있는 ARM의 상장은 소프트뱅크의 향배뿐 아니라 반도체 시장에 줄 영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ARM은 영국 캠프리지에 소재하고 있는 반도체 설계 회사다. Advanced RISC Machines의 약자로 1990년 Apple, 영국 Acorn Computers, VLSI Technology의 합작회사로 설립돼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며 스마트폰시대가 열리자 성장가도를 달렸다. 

주 수익원은 컴퓨터의 CPU와 스마트폰 두뇌로 불리는 AP칩 설계도를 제공하고 받는 라이센스(수수료) 비용이다. 세계최대 반도체기업인 삼성은 물론 애플,퀄컴 등의 주요 IT기업이 모두 ARM 설계도를 사용하고 있고, 전 세계 스마트폰의 95%가 ARM이 설계한 반도체 IP를 사용할 만큼 독보적인 회사다. 연매출이 2조 원도 되지 않는 회사였지만 AI시대가 열리면서 성장성을 눈여겨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2016년 320달러, 우리 돈 약 34조 원에 ARM을 인수하게 된다. 

2. 엇나간 소프트뱅크의 계획 

소프트뱅크가 2016년 ARM을 인수할 때만 해도 시장은 우호적이었다. 반도체 설계의 원천기술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과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당시 지나치게 높게 책정했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손정의 회장은 “20년 내 전 세계는 ARM이 설계한 제품을 1조 개 이상 사용하게 될 것인데, 아주 싸게 사는 것”이라며 일축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거의 모든 장치에 연산처리장치가 필요하며 이에 따라,  ARM이 시장지배력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리고 손정의 회장은 2020년 ARM을 미국의 ‘그래픽카드(그래픽처리장치ㆍGPU)’ 강자 엔비디아에 400억달러에 매각기로 하며 투자금을 회수하는 듯했다. 당시 반도체기업 간 M&A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딜로 반도체시장의 판도 자체를 바꿀 큰 거래였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 독과점 논란에 휩싸이면서 결국 양자 간의 거래는 2년 만에 무산되고 만다. 소프트뱅크는 최대 12억5,000만 달러의 위약금을 챙기며 다시 한번 매수자를 물색했다. 한때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새 주인으로 거론됐지만 이마저도 무산된 상황. 독보적 기술력과 독점적 시장지배력이 오히려 반독점 논란에 휩싸이며 매각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소프트뱅크가 기업공개를 결정한 이유다. 

 

3. 상장 후 가치는 얼마나 될까

이제 시장의 관심은 ARM가 받을 시장가치다.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에 매각할려던 가격인 400억 달러 이상은 조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변수는 소프트뱅크가 처한 재무적 위험과 시장 상황이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기술주의 가치가 폭락하며 ‘비전펀드’의 손실로 위기 상황을 맞았다. 2022년 누적 손실 규모가 6조 2천억 엔(약 59조 6.000억 원)에 이르면서 ARM을 팔기로 한 것이다. ARM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다면 소프트뱅크의 추가 투자는 사실상 중단되기 때문이다. 이미

유동성 확보를 위해 미국 T모바일 지분 22조 원을 도이치텔레콤에 매각한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증권시장에서는 반도체기업을 중심으로 기술주의 하락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최근 챗GPT의 등장을 계기로  ARM이 반전의 기회를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RM은 최근 퀄컴 등 고객사가 개발하는 인공지능 반도체의 설계기반을 개발해 공급하면서 사업영역을 확장해 온 만큼 적어도 기업공개에서 마이너스 프리임엄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구체적인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상반기 중 수요예측을 통해 상장 마스터플랜이 완성될 것으로 보이며  최대 6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