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비리그 졸업장을 버리고 실리콘밸리에 들어선 딜런 필드
2022년 9월. 자이언트 스탭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금리인상 행진이 이어지며 투자 빙하기를 맞이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빅뉴스가 터져나왔다.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을 무려 200억달러에 인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돈으로 약 28조원(당시 환율기준)으로 비상장 기업 인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딜이었다. 인수 대상은 바로 피그마로 웹브라우저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토샵을 표방하며 성장해온 디자인 소프트웨어 업체였다.
시장에서는 놀라운 딜의 규모와 함께 대학 중퇴자가 만들어낸 스타트업 기업이라는 점에 또 한번 주목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처럼 피그마의 창업자도 20대 초반에 아이비리그 대학을 중퇴한 청년 창업가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딜런 필드. 그는 미국 브라운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다가 학교를 떠나 보장된 미래를 접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대학에서 창업자금으로 제공한 장학금 10만달러와 웹브라우저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포토샵을 만들겠다는 비전이 전부였다.
딜런 필드는 자신감으로 넘쳤지만 출발부터 위기의 연속이었다. 자신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직원을 몰아붙여 독단적인 회사 운영으로 팀원들은 떠났고, 개발속도도 더뎌 원했던 제품은 3년이 넘도록 시장에 나오질 못했다. 여기에 아버지가 말기 암까지 걸리면서 그는 모든 것을 그만두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 밖에 없었다. 포기하지 않은 것외 그에게 남은 선택은 없었다.
2. 피그마의 성공비결, 경쟁자가 아니라 사용자에 집중하다
딜런 필드는 창업한지 무려 4년이 지난 2016년 피그마의 베타버전이 출시했지만 불행히도 이미 거대기업들이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고 자리를 잡은 뒤였다. 애플은 맥 운영체제에서 스케치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장을 점유했고, 어도비도 어도비XD로 시장을 양분해가고 있었다. 거대기업의 틈바구니에서 피그마는 설자리가 없었다. 기술력과 자본력, 그리고 인력면에서 그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딜러 필드는 기업의 전통적인 분석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리고 시선을 경쟁자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눈을 돌렸다. 스케치와 어도비XD가 기술적으로 앞섰지만 과연 고객인 디자이너들이 만족할 만한 사용환경을 갖췄을까? 답은 NO였다. 프로그램만 진화했을 뿐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사용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프로그램 자체는 뛰어났지만 디자인을 수정하기 위해 여전히 파일을 주고 받는 옛날 방식을 그대로 사용해야 했다.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변화였다.
피그마는 여기에 집중했다. 디자이너들이 협업하기 좋은 환경 구축하는 것이었다. 소프웨어를 사지 않고 인터넷만 연결되면 작업이 가능하고, 무료가입으로 접근성이 높였다. 그리고 파일이 아닌 링크만 보내주면 곧바로 수정이 가능했고, 모든 디자이너들이 실시간으로 협업이 가능한 작업환경을 만들었다. 시장은 환호했고 피그마는 단숨에 시장의 승자가 됐다.
3. 피그마, 커뮤니티의 힘이 미래임을 보여주다
그렇다면 피그마는 사용자 환경을 바꾸는 것만으로 20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얻었을까? 단순히 협업 툴이라는 기술로만 차별화에 성공했다면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거대기업들이 더 좋은 품질과 싼 가격으로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그마의 진짜 가치는 바로 사용자들을 위한 개방형 커뮤니티의 힘이었다. 피그마에서 디자이너들은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피그마안에서 디자인 정보를 공유하며 필요한 것은 나눴고, 노하우와 결과물을 공유했다.
또 이용자들은 그들이 직접 만든 더 편리한 디자인툴을 공유했고, 심지어 피그마가 제공하지 않은 제작 기능까지 스스로 만들어 커뮤니티에 공짜로 뿌렸다. 여기에 피그마는 이들이 외부 툴을 가져오지 않고도 시스템 내에서 손쉽게 제작하고 공유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결국 피그마는 고객이 참여하는 거대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며 일터가 아닌 놀이터를 만들었고, 고객들이었던 디자이너들은 서로서로 팬이 되면서 그들만의 생태계를 조성하며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이제 경쟁자들의 단순한 패배을 넘어 생존의 위협에 직면했고, 과거 딜러 필드가 창업 초장기 그랬던 것처럼 남은 선택은 하나 밖에 없었다. 피그마를 경쟁자로 남겨두지 않은 것이었고, 최종적인 선택은 200억달러를 들여 갖는 것이었다.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는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앞으로 기업이 가야할 길을 제시한다. 기술적 차별화를 넘어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해 경쟁자가 감히 흉내내지 못할 생태계까지 구축하는 것이다. 결국 소프트웨어를 넘어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커뮤니티의 힘은 융합과 연결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기업성장 동력의 실마리를 제공할 지 모른다. 커뮤니티가 가진 가치는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에서도 다시한번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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